일상

난생 처음 미용실에서 열폭한 이야기

글을써보려는사람 2024. 9. 2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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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연습은 제처 두고 미용실에 가서 열폭한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데, 멈칫한다.
 

그만큼 울분을 토할 일이 맞았던가,
최근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많았어서 엉뚱한 데서 열폭한 것은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썰을 풀기 전에 일단, 미용실에 다녀온 후로 한 달 동안 거울을 볼 때마다 마음이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 생각보다 너무 짧고 빠글 해서 싫었다. 지난번에는 마침 시간이 된 날 그분이 안 계신다 하여 다른 분께 너무나 만족스럽게 머리를 하고 왔는데, 오늘은 그 분이 아닌 분이 안 계신다 하여, 예약시간을 앞두고 마음이 좀 불안했다.
 
요구하는 바를 명확히 알려드리지 않은 나의 불찰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이번에는 최대한 분명하게 나의 요구사항을 말씀드렸다.
 

C컬 파마를 하기 전 머리 기장이 어깨에 닿을 정도로 해주시고, 가장 굵은 걸로 한 번만 말아주세요.

 
분명히 알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신문 기사를 읽다가 눈을 들어 거울을 보니, 머리카락이 목선의 중간쯤으로 뎅강 잘려 있는 것이 아닌가. 머리를 말아 올리면 2cm는 더 짧아질 것이고 지난번처럼 턱선에도 못 미치는 짧고 빠글한 머리가 또 되게 생겼다.
 
머리를 자르기 시작하면서 "머리가 묶일락 말락 하게 말씀이죠?" 하실 때 "예, 파마를 하기 전 머리가 어깨에 닿을 정도로요."라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 않은 나의 탓일까? (아, 상황을 복기하는데 또 부글부글한다.)
 
"지난번에 너무 짧아서 한 달은 우울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분명히 말씀을 드렸는데..." 하고 푸념을 늘어놓았지만 머리는 이미 날아간, 아니 바닥에 흩뿌려진 후였다. 그래서, 그냥 지금 파마를 어떤 식으로 할지 전문가로서 판단을 잘해주시라고 말씀드린 후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는 중이었다.
 
문제는, 머리를 자른 후 다른 분에게 무언가 임무를 맡기고 다른 쪽으로 가는데 나의 귀에 어떤 대화가 들려왔던 것이다.
 
 
 
남자분: (지나가는 말로 뭐라 뭐라 하다가 비웃는 투로) 얼마나 됐어? ...한 3년?
나의 머리를 자르신 분: 아뇨. 1년 정도.
 
 
 
알고 보니 원장님이라는 남자분이, 염색도 안 하고 파마기도 사라진 나의 볼품없는 머리 모양에 대해 비아냥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즉시 알아챘다. 아마, 재수 없게 진상 고객을 만난 동료를 위로해 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와, 그런데 이건 너무 치사한 방식 아닌가?
 
마침 남자분이 약 처리를 하기 위해 나의 뒤로 오셨기에 내가 물었다.
 
"제 머리가 한 3년은 안 한 머리 같지요?"
 
웃으신다.
조금 뜸을 들이다가 다시 질문했다.
 
"제가 진상 고객이라고 생각하셔서 그렇게 큰 소리로 저 들으라고 말씀하신 것인가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셨다. 약처리를 어느 정도까지 할 것인가 알아야 해서... 일단 죄송하시단다.
 
 
쇼펜하우어가 그랬다지 않은가, 비판은 그것이 사실일 때 정말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내 모습이 어떠한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나와 개인적 친분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그런 공격을 받으니 너무 불쾌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러한 현상이 왜 일어난 것인가 곰곰 생각하며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 아마도, 미용실에서 진상을 피우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을 것이라는 점
- 우리나라 사람들의 전반적 스트레스 지수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
- 나도 그렇다는 점
 
 
그리고 시간이 좀 더 흘러 내가 다짐하게 된 점은 다음과 같다.
 
-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할 것
- 악플을 단다거나 해당 미용실에 발길을 끊는 방식으로 응징을 시도하지 말 것
- 헤어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역할, 미용실이라는 공간이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나아가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법 등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자고 화두를 던질 것
 


첫 번째와 두 번째 다짐은 선결제를 이전과 같이 함으로써 지켰고,(그런데 나는 결제를 함으로써, 그리고 글을 씀으로써 다른 방식으로 응징을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의를 마구 드러내고 있다...)
세 번째 다짐은 적어도 내가 결제할 때는 얼굴을 비추실 줄 알았는데, 내가 뵙기를 요청하자 옆에 숨어 계시다가 빠꼼히 얼굴을 내미셔서 간신히 알현하고는, 그런 말은 손님이 간 후에나 하시면 좋겠다고, 미용실이 서로 행복한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말씀드림으로써 이행할 수 있었다.

서로 좋게 인사하며 미용실에서 나올 수 있어서 감사하다.

머리는, 너무 짧다고 불평하는 나로 인해 화들짝 놀란 선생님께서 심지어 다듬기를 멈춰버려 왼쪽과 오른쪽의 기장이 다르지만, 적어도 빠글머리는 아니어서 참으로 참으로 다행스러운 상태이다.
 
 
 
정작 씩씩거리다가 비로소 진정 및 생각 모드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된 독서 일지는, 내일로 미뤄야겠다.
 
나 오늘 진짜 수고했다.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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