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125

당* 거래, 그리고 공동주택 경비원의 업무 범위

중고 거래를 하고 오는 길이다. 경비실에 맡겼으니 찾아가라고 했다. 놀라웠다. 내가 인지하고 있는 경비원의 직무 범위에 '주민의 잔심부름 처리'는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비실에 불이 꺼져 있는데요, 라고 메시지 보내자 경비가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은데... 라는 답신이 왔다. 경비가, 라는 말이 서늘하게 들려왔다. 막상 대면하여 만나보니, 정말 구김살 없고 점잖은 미소를 지닌 사람이었다. 아, 아예 모르고 있구나. 당신의 눈빛이 타인에게 학습된 무력감을 형성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를. 경비아저씨께 이런 부탁까지 하시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말하면 나를 정말 이상한 여자로 보겠구나, 생각하니 더욱 슬퍼졌다.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2021년 개정안에 따르면 '택..

일상 2024.01.19

기념품점을 나서는 사람

사람들이 문을 열고 나온다. 예쁜 아이템을 들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오는 이도 있고, 구매 의사는 있으나 원하는 물건을 찾지 못하거나 환전한 금액이 부족하여 심드렁한 표정도 있다.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동행인(주로 부모)의 반대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아이의 얼굴이다. 하지만 얘야, 그거 아니? 기념품의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을 거야. 너무 슬퍼하지 말렴. 보금자리로 돌아간다. 호텔 인터넷 안녕. 사이판 안녕.

일상 2024.01.03

Such a Flirt 혹은 Attaining Art of Loving

스노클링 강사와 희롱하는 여성을 보고 슬픔이 밀려온다. 아이돌 댄스를 끊임없이 따라 추는 소녀의 모습에 불안해진다. 에리히 프롬은 에서 분리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합일’을 추구하는 일을 사랑이라 정의하였고, 지극히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형태인 성적인 합일을 미성숙한 사랑으로 분류하였다. 종족 유지와 번식 위한 본성의 영역인 것이다. 사랑받으며 살아가고자 하는 저마다의 외침인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나의 모습이기도 하지 않았던가. 김훈 님은 노인으로서 키스하는 연인들을 바라보는 것이 그리도 좋다 했는데. 그 덧없음과 허망함에, 나의 마음은 일그러졌네. 자신의 매력을 과시하고 또 표현하고자 하는 타자의 욕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밤하늘에 총총한 별을 올려다본다.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일상 2024.01.03

여행지에서

여행지에서의 밤이 힘겨울 것이다. 왜 안 그렇겠는가. 피곤하기도 하고, 낯설기만 한 곳인데.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없다는 아이의 투정에, 그러게, 하고는 속으로 한 마디 덧붙인다. 너도 어릴 때 여행 가면 밤에 많이 울었단다. 그러면 엄마는 달래고, 또 달래다가 버럭, 화를 내기도 했지. 건너 방 엄마처럼. 여행은 그런 것이다. 낯설고 불편한 곳에서, 나를 하염없이 돌아보기도, 인생들을 들여다보기도 하는 것. 어쩜 사는 모습들이 하나같으면서도 다른 모양으로 들 살아가는 것인지. 뒷목이 당겨와 이른 시각부터 한 잠 자다 깨어 언제 다시 잠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상 2023.12.30

빛과 미소와 생명

#1. 빛 출근길, 가로등 불빛이 꺼졌다. 퇴근길, 깜빡, 하고 가로등 불빛이 켜진다. 어둠의 시간이 시작된다. 하지만 빛이 있어, 길을 밝힌다. #2. 미소 나에게 2학기 영어수업은 크리스마스 트리였다. 왜냐하면 재미있게 영어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 수업시간에는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학생이 수업 성찰록에 남긴 글이다. 분명 독자를 의식하고 쓸 수밖에 없는 글이지만, 그래도 참 고맙다. #3. 구급차 구급차가 지나간다. 안 멈추고 직진하는 차량 사이로, 간신히. 안전하게 신속하게 목적지에 도착하여, 적절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기를. 생명을 위해 기도한다.

일상 2023.12.29

어느 교사의 방학 전 증후군, 아니 감사 기도

방학 전 증후군, 그리고 첫 번째 감사 계속 늦잠을 잔다. 샤워하며 코를 풀 때 매일 코피가 난다. 이 주 정도 됐나 보다. 목덜미와 어깨가 심하게 뻐근한 지는 더 오래다. 자기 전엔 매일 오한이 든다. 오늘은 혀에 검은 반점을 발견했다. 방학 전 증후군 치고 이번엔 좀 심하다. 유독 극성스럽게 살아온 탓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잘 것이다. 여행 가서도, 여행 다녀와서도. 적어도 며칠은. 방학이 와서 다행이다. 참 감사하다. 두 번째 감사 방학이 시작하기 전에 과목별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쓰기 시작한 것은 수 년 만에 처음이다. 폭풍 업무를 감당하긴 했어도, 비담임인 덕분이다. 세 번째 감사 맡아주실 분께서 일을 맡아주셔서, 어떤 일을 간신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며칠 마음 고생을 했는데, 정말 감사한 ..

일상 2023.12.28

애도

고 이선균 씨의 소식을 듣고 하루 종일 마음이 편치 않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선균 씨를 위해 한 번도 기도하지 않았음을. 성도는 마땅히 기도해야 하는 존재인데. 비통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한 사람의 목숨과 삶이, 사람들의 무신경한 가십거리가 되지 않기를. 그의 자녀들과 아내분이 이 아픔의 시간을 잘 견뎌내기를. 그리고 우리가 모두 함께 애도하며 기도하기를.

일상 2023.12.27

교만, 몰이해, 그리고 소통

#1. 교만업무 회의를 하고 마음이 편치 않다.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좀 함께 짐을 져주실 생각은 없으신 것인가요? 라고 호소하듯 말하던 나의 모습이 굉장히 교만한 모습이었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나는 심지어, 우리 부서의 업무를 가져가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시는 다른 분께 '그것은 저희 부서의 업무와 더 관련성이 높아 보입니다.'라고 말하며 짐짓 의로운 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결국 그 업무를 못 이기듯 떼어 드리게 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마치 들으시라는 듯이. 교만했다. #2. 몰이해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분의(다른 분이다) 용기 있는 저는 못 하겠습니다. 로 인해 내가 맡게 된 업무에 대하여, 엄청난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알게 되었다. 그 분..

일상 2023.12.26

성탄

#1 이제는 정말 자동차 열쇠를 찾아야 하는 순간이 왔다. 자동차 계기판에 열쇠 배터리가 다 되었음을 알리는 표시가 떴기 때문이다. 열쇠를 찾아볼 기력도 시간도 없어, 어디에 떨어뜨렸는지 모르겠는 열쇠를 차에 두고, 문을 잠그지 않은 채로 다닌 지 두 달은 족히 되었나보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는 너무 힘들었으니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아니었으니까. #2 새벽예배 시각이 다 되어 도착했더니, 교회 주차장이 가득 찼나보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줄지어 기다리던 그 곳에서 그대로 시동을 끄고 나오는 성도들이 보였다. "여기에 주차를 해도 괜찮을까요...?" "딱지를 떼기도 해서, 예배 직후에 나오셔야 할 거예요." "아, 예..." 마음이 어려웠다. 이건 법규를 위반하는 일이고, 타인에게 피해..

일상 20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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