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126

성탄

#1 이제는 정말 자동차 열쇠를 찾아야 하는 순간이 왔다. 자동차 계기판에 열쇠 배터리가 다 되었음을 알리는 표시가 떴기 때문이다. 열쇠를 찾아볼 기력도 시간도 없어, 어디에 떨어뜨렸는지 모르겠는 열쇠를 차에 두고, 문을 잠그지 않은 채로 다닌 지 두 달은 족히 되었나보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는 너무 힘들었으니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아니었으니까. #2 새벽예배 시각이 다 되어 도착했더니, 교회 주차장이 가득 찼나보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줄지어 기다리던 그 곳에서 그대로 시동을 끄고 나오는 성도들이 보였다. "여기에 주차를 해도 괜찮을까요...?" "딱지를 떼기도 해서, 예배 직후에 나오셔야 할 거예요." "아, 예..." 마음이 어려웠다. 이건 법규를 위반하는 일이고, 타인에게 피해..

일상 2023.12.22

감사

매일 신문을 받아만 보았지, 비 오는 날에도 비에 젖지 않은 신문을 배달하는 손길은 못 보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도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해주는 손길들이 곧 이 거리를 말끔하게 해주겠구나. 내가 인내하며 그저 묵묵히 해내는 일들이 또한 누군가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겠지. 그렇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닌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없다.

일상 2023.12.15

압도당한 기분일 때는

중고서점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좋은 책들을 좀 골라야 하는 일이 있어서요.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책은 단 한 권도 고르지 못하고 (심지어 제대로 몇 자 읽어보지도 못하고!!) 책 제목만 구경하다 발길을 돌렸습니다. 세상에 책들은 많아도 너무 많고, 제가 아는 것들은 없어도 너무 없지 않겠어요? 좋은 책을 좀 만나고 오겠다는 과업 달성은커녕, 압도당한 기분에 무력감만 더해진 채 터덜터덜 돌아왔지요. 살다 보면 이런 순간들이 많아요. 저는 최근에 더욱 이런 증세를 많이 느꼈어요. 이런 기분이 유독 많이 느껴지는 순간들과 대처법을 좀 알아볼까요? 1. 우리가 무력감을 느끼는 순간들 1.1. 일감이 몰려있을 때 해야 할 일은 많고, 정해진 시간은 다가오는데 일이 진전이 별로 없을 때 우리는 한없이 조바심..

일상 2023.12.10

세상을 사랑하는 법

1. 외국인 친구를 사랑하기 대만에서 친구가 사촌동생과 함께 놀러 왔다. 10년 여 전 대만에서 처음 만난 오랜 인연이다. 한국문화에 관심이 있어 한국어교실에 등록했던 소녀가 이제 사회인이 되었다. 요리사인 사촌동생을 소개하며, 공부를 못해서 요리를 배웠다고 덧붙였다.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사촌동생은 요리사인 자신을 소개하는 사촌언니의 말을 듣는 내 얼굴에 스치는 당혹감을 보고, 어리둥절하면서도 멋쩍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다급하게 말했다. 요리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잖아요. 게다가 요리동아리 학생들을 보면서, 요리가 얼마나 치유하는 힘이 있는지를 깨달았어요. 동생한테 통역해 주세요. 사촌동생의 얼굴이 밝아졌다. 요리해서 나눠주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2. 지하철 옆 사람을 사랑하기 피곤을 견딜 수가..

일상 2023.12.03

내가 사랑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증거

1.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나의 소식을 궁금해하고, 나의 이야기를 듣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사랑 받는 사람입니다. 저는 어제 오랜만에 친구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통화를 하며 업무를 진행하며 느끼는 고충을 나누는데, 큰 위로를 받았지요. 2.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 내가 힘들어서 무너질까봐, 혹은 건강이 나빠질까봐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사랑 받는 중입니다. 어제는 연일 스트레스 받아가며 일하고 있음을 아시는 친정 어머니께서 들르셔서 미역국을 끓여주시고, 이불을 정리해주고 가셨습니다. 3.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 힘내라고 작은 쪽지를 건네주거나, 음악을 추천해 주거나, 토닥여주거나, 따스한 눈빛을 보내주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제..

일상 2023.12.01

사랑에 관한 고찰 #1

사랑은 영원불변의 인기 주제이다.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근원적인 무엇이기 때문이리라. 톨스토이는 에서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사람이 오직 자신의 일을 생각하는 마음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저 인간의 착각일 뿐이고 실제로는 인간은 사랑의 힘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 차있는 자는 하느님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고 하느님은 그 사람 속에 계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의 힘으로 살아간다. 부모의 사랑으로부터 시작하여 연인의 사랑, 배우자의 사랑, 자녀의 사랑, 스승의 사랑, 친구의 사랑,..., 온갖 종류의 사랑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만들어가고 있다. 오늘은 같은 지역 선생님들이 ..

일상 2023.11.28

생강을 생각하며 생강 예찬 (파종 및 재배시기, 꽃말, 생강 효능, 생강으로 만든 음식, 레몬생강청 만드는 법)

생강은 심어 놓으면, 나올까 말까 생각을 많이 한 후에야 싹을 틔운단다. 심은 후 두어 달이나 지나야 싹이 살그머니 올라와서 생각을 많이 하는 생강이란다. 나도 오늘은 글을 쓸듯 말 듯 망설이기만 하다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생강과 같은 모습이다. 오늘은 또 무슨 글을 쓸 수 있나, 이리저리 생각은 해보는데 생각보다 어떤 주제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것만 깨달을 뿐이다. 글을 영 시작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학생에게, 지난 시간에 찾아둔 영어단어 위주로 한 번 써보라고 오늘도 조언을 한 나이건만 ㅎㅎ 영어 에세이 쓰는 시험에 한글로라도 두어 줄 채운 학생이 차라리 나보다 낫다. 생강에 대해 조사한 흥미로운 자료(글감)를 일단 모아 본다. 자료 출처: 나무위키 다음백과 등 1. 생강 동남아시..

일상 2023.11.20

두려움과 치유에 대하여

#1. 빈대의 공포 피아노 레슨을 받고,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으나, 내 옆에 앉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좌석에 엉덩이를 1/2 내지 1/3 정도만 걸친 상태로 앉는 것이었다. 내게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상태였다 거나, 혹은 내가 심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행색은 아니었던 것 같고, 내가 부피를 지나치게 많이 차지하는 옷을 입고 있는 상태도 아니었는데, 참으로 이상했다. 귀갓길 지하철에서 내리면서야 나는 깨달았다. 빈대로구나. 빈대에 대한 공포가 사람들로 하여금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는 자세로 앉도록 만든 것이로구나. 나도 혹시 몰라 집에 돌아오는 길에 코트며 치맛자락을 몇 번이고 훌훌 털어내었다. 실로 공포심은 사람을 위축시킨다. ..

일상 202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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