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프*다가 너의 가치를 높여 주지는 않잖아,

글을써보려는사람 2023. 9. 10. 16:04
728x90

제게 하는 말이에요.
반말에 놀라셨다면, 죄송해요.
 
방학을 맞아 한국에 놀러 온 사촌언니가 자신은 안 어울려서 착용하지 않는다며 선글라스를 선물로 주었어요. 고맙다며 받고 보니 어머나, *라다인 거예요. 가슴이 벌렁거리더라고요. 프.라.다.라니...
뭐 명품이 있으면야 멋지고 좋지만, 명품을 소비하는 데 제 삶의 우선순위가 있는 편은 아니(라고 믿)고, 그런 물건들을 덤벙덤벙 살만한 여유도 없어서 프라다는 '그 어느 누군가의 것'으로만 여겨왔는데 말이죠.
 
어디 멋 부리고 나갈 일도 없었고, 지난[혹은 아직 지나고 있는;;] 여름은 이래저래 마음이 쉽지 않았어서 뭔가 프*다 선글라스를 끼고 어디라도 나가는 것이 적당하지 않게 여겨지기에, 선물 받고도 한 달 반 가량을 서랍 속에 고이 모셔놨어요. 잃어버릴까 염려도 되었던 것 같아요. 혹시 당근에 팔면 얼마나 받으려나, 생각도 몇 번은 들더라고요. (언니 미안!)
 
그러다가 어제 피아노 레슨을 갔다가 아이들과 잠시 외출을 하려고 나서는데, 왠지 나의 프*다...가 필요하겠더라고요.
 
 
 
 
 
 
 
 
프라* 선글라스는 완벽한 매치였어요.
같은 학교 선생님이 작아서 못 입는다며 주신 흰 티와, 재작년에 구입한 스커트, 그리고 코스트코에서 산 흰 운동화, 그리고 당근으로 산 짝퉁(무슨 브랜드 짝퉁인지는 모르겠어요ㅎㅎ;;) 가방의 품격을 선글라스가 한껏 높여주는 느낌이었달까요.
지나가는 사람들도 저를 다 쳐다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어요.
 
지하철에 타면서도 선글라스를 벗어 가방에 넣는 대신, 머리 위로 올렸지요. 우아하게 독서까지 하느라 숙인 머리 위로 금속테가 미끄러져 내리면 손가락을 멋진 모양으로 만들어 무심한 척 다시 머리 위 적당한 자리에 고정시키기도 하고요.
 
 
 
 
 
 
 

명품은 명품이더라고요. 아, 실내에 들어가면 색이 밝아지고 밖에서는 저절로 어두워지더라니깐요!

 
스스로가 멋져 보인다고 인식하는 제 자신이 우스우면서도 싫지는 않은 오후였어요.
 
 
 
 
 
 
 
에구. 그런데 오늘은 좀 달랐어요.
 
어제랑 똑같은 차림으로 교회에 나섰거든요, 선글라스를 깜빡한 것만 빼고요.
 
엘리베이터 다시 타고 올라갈 시간적 여유는 없고 오늘은 그냥 가자, 생각하면서도
어제와 달리 후줄근해 보일까 봐, 흰 티셔츠 어딘가에 얼룩이 묻어 있을까 봐 염려하는 제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제게 말해주었어요.
 

프*다가 너의 가치를 높여 주지는 않잖아,

 
라고요.
 
 
 
 
 
 
 

글을 맺으며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들의 백합화 하나만 같지 못하다는 말씀이 떠올라요.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는 말씀도 떠올라요.
 
사람은 사람 자체로 고귀하지 프라*를 휘감는다고 더 멋진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님을, 잊지 않는 오늘과 내일의 제가 되기 원해요.
 
 
 
마음의 시선이 정말 중요한 곳에 잘 머물러있지 않으면, 우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될 것 같아요.

우스꽝스럽기만 하면 다행이게요? 프라* 선글라스 선물로 주는 사촌언니 없는 사람을 깔보는 위험한 사람이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728x90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치기에 대하여  (361) 2023.09.18
냄새와 게으름에 대한 사유  (308) 2023.09.14
택배 기사님 전상서, 그리고 추석 택배 마감 일정  (39) 2023.09.10
생각없이 일하면 생기는 일  (351) 2023.09.08
우리는 위로가 필요해  (83) 2023.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