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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의 역사> - 추함의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의 추함

특히 인간 자신의 생식보다 더 추하고 더 불쾌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시커먼 피, 더러운 씨, 불길한 월경, 악취 나는 정액의 혐오스러운 혼합은 몹시도 역겨운 것이 될 것이다. ... 그럼에도 이것들은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필요하며, 모든 좋은 것들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자연의 추함이란 좋은 것이 아닌가? - 안토니오 로코 재인용 (움베르트 에코 149면) 당황스러우면서도 반박할 수 없는 서술입니다. 생리적 욕구를 통해 생명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창조주께서 왜 이런 (때때로) 추잡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인생의 밑바탕에 설계해놓은 것일까, 하는 것은 답을 얻을 수 없는 근원적 질문이지요. 안토니오 로코는 감미롭고 예쁜 것이 곧 역겨운 것이고 역겨운 것이 곧 아름다운 것이라는 통찰 끝에 추..

도서 2024.10.26

오늘의 위로

라흐마니노프 프렐류드 Op.23 No.4 https://youtu.be/1qoPDQzXVmk?si=5h_0z8fOgeQ4r1cG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번 https://youtu.be/lmAn_QWyw_w?si=890UYQziOyNfrOpH 리스트 Rhapsodie Espagnole S.254 https://youtu.be/KhHVTeuW5zI?si=Wek6eK4hhYRYYpaM https://youtu.be/cQxHB7yJxJo?si=1ObXfSV5dnYUqE5y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 https://youtu.be/K5J_tIlo8cQ?si=azauAqKsZEKDEf2G 슈만 Novelletten Op.22 No.8 https://youtu.be/t57cKpos1E8?si=NmmOU9GGb..

문화 예술 2024.10.25

<추의 역사>와 괴물

4장 괴물들과 기이한 것들에서는 일반적이거나 ’정상‘ 범주에 들지 않아 기괴하게 여겨지고, 따라서 이상하게 시선을 끄는 대상, 즉 괴물에 대해 다룹니다. 다음의 시를 살펴보시죠. 루이지 풀치 ‘모르간테’, V (1483~1482) 그는 머리가 곰 같고 털이 수북하고 의기양양하며, 한 입에 바위를 박살 낼만큼 강한 엄니를 가졌네. 혀는 온통 비늘에 덮였으며 한쪽 눈은 가슴 한가운데 붙었으니 부리부리한 눈알은 폭이 두 뼘이라. 수염은 머리털만큼 덥수룩하고 두 귀는 당나귀 귀요 길고 이상한 팔엔 억센 털이 났네. 가슴과 몸도 온통 털투성이요, 손과 발엔 긴 손톱 발톱이 자랐네. 마른 땅에선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에 벌거벗고서 개처럼 짖으면서 다니는구나. 누구도 이처럼 흉측한 괴물을 본 적 없으니, 손에는 마가..

도서 2024.10.24

움베르트 에코 <추의 역사>를 읽으며 생각해 본 은유의 역할

를 읽어나가는 중입니다. 오늘은 ‘은유’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지금이야 성경이 세계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이 되었지만, 성경 번역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전, 게다가 문맹률이 높던 시절에는 글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성경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성경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옮기는 삽화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기독교에 대한 이해 없이 서양미술사를 논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림 언어와 은유 그런데 묵시록(계시록)의 내용을 표현한 작품들은 그 자체로 성경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즉, 성경의 이야기를 재현한 하나의 ’은유‘ 혹은 ‘표식’일 뿐,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다음 그림을 보고 또 해당 성경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 개역개정) 1...

도서 2024.10.20

<추의 역사>와 죽음

움베르트 에코의 를 읽는 중입니다. 순교자와 죽음에 대한 내용을 읽으며 생각한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합니다. 역병, 기근 등으로 인해 기대수명이 짧았던 중세시대에는 죽음은 삶과 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고 합니다. 형제 자매, 부모, 친지, 이웃의 죽음이 늘 곁에 있었으니까, 죽음을 외면할래야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한편 현대인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갑니다. 영아 사망률이 낮아져 평균수명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염색과 성형수술, 각종 시술을 통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많고, 영양상태가 좋아 이제는 꼬부랑 할머니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류는 각종 난치병도 속속 정복하며 기대수명도 날로 높아지고 있지요. 다음은 말기 췌장암 완치 판정을 받은..

도서 2024.10.19

필살기, 힘 조절, 웃는 사람

#1. 필살기 오후부터 뒷목이 당겨왔다. 일어나 앉으면 심해지기에 도로 누워보았는데 통증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침대 발치에 목과 어깨를 걸쳐 잠시 스트레칭을 해보아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에 눈을 떴는데, 통증이 밤새 함께 했는가보다. 옆으로 누워 베개와 얼굴이 평행에 가까워지도록 목을 뒤로 젖혀 한참을 있었더니 좀 낫다. 필살기로 일한 대가를 필살기로 맞서는 중이다. #2. 힘 조절 엄지손가락은 든든한 손가락이다. 연필을 잡을 때, 과일을 깎을 때 고마운 지지대 역할을 한다. 때때로 우직함은 걸림돌이 된다. 음역이 넓은 아르페지오를 연주할 때, 엄지로 연주하고 재빨리 손을 돌려 다른 손가락으로 그 다음 음을 연주하는데, 엄지가 중간에 갑자기 듬직한 소리를 내버리면 이..

일상 2024.10.16

<이반 일리치의 죽음> 6장 독서일기 - 가림막

가림막을 친다는 것은 무언가를 숨기거나 어떤 대상으로부터 회피하는 행위입니다. 잘못을 숨기고 싶어서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할 수도 있고, 초조함을 숨기고 싶어서 애써 웃어보일 수도 있겠지요. 이반 일리치는 다가오는 죽음을 외면하고 싶어 가림막을 찾습니다. 일에 몰두하기도 해보고, 카드 놀이에 열중해보기도 하고,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적 생각을 의식적으로 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통과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어떤 가림막도 소용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성공적인 가림막이 장면 말미에 등장합니다. 바로 (자신의 죽음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따라서 죽음을 연상시키는 탁자를 옮기는 것을 반대하는 딸과 아내에 대항하여 싸울 때 느낀) ‘분노’였습니다. 화를 내느라 옆구리의 통증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

도서 2024.10.15

<이반 일리치의 죽음> 5장 독서일기 - 자신과의 대화

5장은 3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장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처남이 이반 일리치를 보고 탄식 소리를 가까스로 삼킵니다. 처남의 반응에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더욱 깨닫고는, 문을 걸어 잠그고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문을 잠그는 행위는 타인과의 단절, 그리고 자신과의 독대를 상징하지요. 이반 일리치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처남의 시선으로부터도, 남동생을 의식해 유달리 잘 대해주는 아내의 가식으로부터도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 거울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성찰의 시간입니다. 정면도, 측면도 요모조모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나의 내면과 외면,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들여다봅니다. 청소년기에 접어드는 아이의 방에 거울을 놓아주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어디..

도서 2024.10.13

국밥집 얼음땡 아줌마의 원포인트 레슨

출출하여 국밥(을 파는 냉면)집에 들어갔습니다. 옆 테이블에서 젊은 부부가 연년생 혹은 쌍둥이인 듯한 형제를 데리고 밥을 먹고 있었지요. 동생인 아이가 유모차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떼를 쓰며 울기 시작했고, 이리저리 사람 구경을 하던 저의 관심은 이제 이 가족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타이르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아빠가 데리고 나갔다 오시더군요. 돌아온 아이의 투정은 계속되었습니다. 아이의 목적은 자신도 엄마 옆에 앉는 것이었지요. 형이 엄마 옆에 앉아 있잖아, 00는 아빠 옆에 앉자, 하는 말로도 아이는 달래 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앞에 있는 엄마 냄새가 그리웠나 봅니다. 엄마 옆에 앉아서도 격앙되었던 마음이 잘 가라앉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엄마 옆자리에서 유모차로 쫓겨나게 된 계기가 된 것인지..

교육 2024.10.13

<이반 일리치의 죽음> 4장 독서일기 - 존엄에 대한 공감도는?

사람들은 이반 일리치의 고통에 관심이 없습니다. 다음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쳐버리고 싶어 하는 이반 일리치에게 공감하지 않는 의사의 모습입니다. 이반 일리치에게는 오직 한 가지, 자기 상태가 위험한지 아닌지가 중요했다. 하지만 의사는 이 부적절한 질문을 무시했다. 의사의 관점에서 이런 물음은 무익하고 논의할 필요도 없었다. (43) 이반 일리치는 크게 고통스러워하며 자신에 대한 깊은 연민과 함께, 이토록 중요한 문제에 그리도 냉담한 의사를 향해 크게 분노가 일었다.(43) 이반 일리치는 의사의 모습에서 피고인을 대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공과 사를 구분하며 개인의 감정을 업무에 일절 개입시키지 않는 전문가로서의 면모 말이지요. 의사를 향한 이반 일리치의 분노는 지난날의 자신에 대한 분노 혹은 회..

도서 202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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