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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통해 진단해 본 나의 안전도

내가 셜록 홈즈는 아니지만, 질문과 탐구의 과정을 통해 논리적 추론을 연습하면 문제의 답이 보이기도 한다. 몇 년 전 생활 지도를 할 일이 있어 교무실로 오라고 교실에 있던 학생을 불렀는데, 일어서며 의자를 넘어뜨렸다. 불만의 표시였다. 일어서다가 의자가 넘어진 것인데 아이를 징계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흥분하시는 보호자께 양해를 구하고, 미리 준비하여 구석에 두었던, 동일한 의자로 시범을 보였다. 의자가 상당히 무겁고 무게 중심이 아래에 있어서, 여간해서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큰 소리가 날 테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의자 등받이가 거의 45도 이상 넘어가거나, 혹은 어떤 물리적인 힘이 가해지지 않는 이상 의자는 (쿵!) 이렇게 원래 자리로 되돌아 옵니다. 따라서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중에 의자..

일상 2024.06.15

추측에 대한 이야기들(작성중)

p.305 비교적 소수의 고래잡이만이 그 고래의 실체를 봤고, 실제로 맞서 싸운 건 극소수에 불과했다. 고래잡이 선박의 수가 워낙 많고 넓은 바다 전체에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으며, 그중 많은 수가 외딴 해역에서 무모한 추격을 하느라 꼬박 1년이 넘도록 새 소식을 전해 들을 다른 선박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기 때문이다. p.306 그렇게 참담하게 패퇴하는 경우가 반복되다 보니 모비 딕에 대한 공포는 점점 쌓이고 부풀려졌으며, 급기야 용맹한 고래잡이들의 귀에까지 흰 고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이들의 용기마저 뒤흔들기에 이르렀다. 온갖 종류의 터무니없는 소문이 과장되었고, 고래와 사투를 벌인 실화는 더 끔찍하게 각색됐다. p.307 그러니 드넓은 바다를 이리저리 흘러 다지며 몸집을 키우고 한껏 부풀려진 ..

도서 2024.06.14

<모비딕>을 통해 살펴보는 힘의 역학관계

1권 33장부터 36장에서 멜빌의 시선은 작살잡이장, 선실의 식탁, 돛대 꼭대기, 뒤쪽 갑판 등 배의 다양한 장소 및 각 장소에 있는 인생들에 머문다. 에이해브 선장이 있는 뒤쪽 갑판에서부터는 저물녘, 황혼, 첫 번째 야간 당번, 한밤중과 같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간 사회를 고찰한다. 해당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강자는 낮의 시간을 점유하고 분노를 숨김없이 표현하며, 약자는 밤의 시간으로 내몰리고 웃는 얼굴을 한다는 것이다. 1. 강자1.1. 낮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는 강자 아침 식사를 마친 이후부터 해가 저물기까지, 에이해브는 끊임없이 거닐며, 자신의 생각에 몰두한다. p.273 그런 데다가 밭도랑처럼 주름진 이마를 눈여겨봤다면 거기에서는 더 이상한 발자국, 쉼 없이 거니는 상념의 발자국..

도서 2024.06.13

시험 원안지 제출 기일보다 디벗보다 사람이 먼저

알코올 중독, 도박, 신체적 폭력 등의 문제로 인해 가정폭력을 겪고 있는 자녀들이 시설에 안전하게 있을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말을 한 자 한 자 아이의 귀에 들려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지문을 새로 골라 학습지 인쇄를 다시 했고, 수업 연구를 다시 해야 했으며, 평가 원안 제출을 기한 내에 제출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한 아이의 영혼이 깊은 우울로 빠져들도록 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 디지털 기기 활용법 의무 연수 시작 시간 준수를 위해 평소와 달리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있던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은 정말 부끄럽게 여겨야 할 일이다. 화면을 들여다 보느라고 친구의 표정을 살피지 못하게 되는 것 또한 경악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내 모습에 소망이 ..

일상 2024.06.11

생명 예찬

3박4일 간의 여행을 떠나기 전, 화단을 좀 돌보았다. (그러느라 여행 가방은 안 챙긴다고 잔소리를 듣긴 했다.) 물을 너무 적게 주어 축 늘어진 스킨답서스에게 물을 충분히 주고, 지난겨울 물꽂이를 시도해 놓고 병에 이끼가 끼도록, 그것도 매서운 겨울바람 속 다용도실에 방치했던 호야와 아이비를(어려운 환경에서도 새잎을 틔워낸 끈질긴 생명력을 보라!) 마침내 화분에 심어주고, 율마 분갈이를 시도했는데, 앗, 흙이 마른 상태에서 하지 않아서 옮겨 심다가 뿌리가 많이 뜯겨버렸다. 흔들흔들 쓰러지지 못하도록 지지대를 세워주고, 새순을 떼어내고 가지도 많이 쳐냈다. 지금은 상한 뿌리를 회복하는 데 에너지를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사다 두었던 녹보수를, 같은 화분에 다시 옮겨 심었다. 이번에는 건강하게 무럭무..

일상 2024.06.09

달팽이

달팽이 - 패닉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 더 지치곤 해 문을 열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깨면 아무도 없어 좁은 욕조 속에 몸을 뉘었을 때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줬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 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모두 어딘가로 차를 달리는 길 나는 모퉁이 가게에서 담배 한 개비와 녹는 아이스크림 들고 길로 나섰어 해는 높이 떠서 나를 찌르는데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어느새 다가와 내게 인사하고 노랠 흥얼거렸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 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내 모든 걸 바쳤지만 ..

일상 2024.06.08

<이처럼 사소한 것들> 독서일기 #3 - 슬픔이 안전을 낳다

펄롱은 출생이 고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안전한 곳에서 태어나 성장한다. p.15 펄롱 엄마가 곤란한 지경에 빠졌을 때, 가족들은 외면하고 등을 돌렸지만 미시즈 윌슨은 엄마를 해고하지 않고 계속 그 집에 지내며 일할 수 있게 해줬다.p.16 펄롱은 유아기를 주로 미시즈 윌슨 집 부엌에 있는 요람 안에서 보냈고 다음에는 커다란 유아차의 안전띠에 매인 채 수납장 옆, 길쭉한 파란 주전자에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지냈다. 펄롱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커다란 서빙용 접시와 시커먼 레인지―뜨거워! 뜨거워!―그리고 두 가지 색 정사각형 타일로 덮인 반들거리는 부엌 바닥이었다. 파란 주전자며 시커먼 레인지에 손을 뻗을 때마다 옆에서는 뜨거워! 뜨거워! 하고 어린 펄롱을 보호하기 위해 소리쳤을 것이고, 이것은 펄롱의 가..

도서 2024.06.07

<이처럼 사소한 것들> 속 사소하지 않은 친절들

1. 친절할 용기 펄롱은 친절한 사람이다. p. 56 "틀리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 당신은 속이 물러. 그래서 그래. 주머니에 잔돈이라도 생기면 다 나눠주고―"p. 86 "너희 헌금함에 넣을 잔돈 있니?" 예배당 마당에 들어설 때 아일린이 딸들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 "아니면 너희 아빠가 다 누구 줘버렸나?"p.102 "오실 줄 알았어요 그래서 안 부치고 가지고 있었어요. 엄마가 그러는데 아저씨는 신사래요." 펄롱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친절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 때 괴로움을 느끼며, 일신의 안락함을 등지고서라도 옳다고 믿는 선택을 할 때, 마주할 현실에 대한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도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p.99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 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도서 2024.06.06

나에게 'No'를 'Say'하다.

연수를 듣고 있는데 호흡 곤란 증세가 심해졌다. 해소되지 않은 육체적 피로와, 여러 임무의 수행으로 인한 책임감과, 자발적으로 선택한 몇 가지 일들, 그리고 새벽예배, ... 중요한 것은 ‘yes'라고 말하라고 강요한 사람도 없는데 스스로 모두에 대해 모든 일에 대해 ’yes'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것을 감당해 낼 능력이 도저히 없음을 깨닫고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표를 채우고 또 채워오던 스스로에게 오늘은 정말 정말 정말 신경질이 났던 것이다. 의 28면에 등장하는 ‘우아’라는 단어에 토악질이 날 것만 같아서 당장 덮고, 표지 구경만 하던 을 펼쳐 들었다. (백만 배는 더 가독성이 있는 문체에 호흡곤란 증세를 잠시 잊었다.) 몇 장 펄럭이다가(‘읽다’는 동사는 필자께 송구해서 못 쓰겠다), 세이노..

일상 20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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